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웃나라/안 좋은 사이 (문단 편집) ==== 관계 변천사 ==== * [[한반도]]가 [[일본 제국|일제]] 식민지에서 [[8.15 광복|벗어난 후]], 1950년대에는 한중일 모두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때는 3국 사이에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. 그나마 [[미국]]과 [[대만]]을 통해 같은 자본주의 진영 국가인 [[대한민국]]과 [[일본]]이 간접적으로 얽혀 있었을 뿐이다. 한국과 일본은 [[재일교포 북송]]이나 [[니가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]] 등으로 자주 충돌했다. * 이후 1965년 한국과 일본은 [[한일기본조약]]으로 외교관계를 맺었고, [[중국]]과 [[북한]]에 대항하여 반공전선을 구축하였다. 하지만 1973년 [[김대중 납치 사건]]과 1974년 [[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|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]]에 [[조총련]]계 [[재일 한국-조선인|재일교포]]인 [[문세광]]이 범인이었음이 밝혀지는 바람에 한일간의 관계가 극도로 험악해지기도 했다. * 1980년대는 한일관계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.[* 다만 당시에는 [[일본 대중문화 개방]]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이었던 데다가 [[일제강점기]]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기성세대의 영향으로 인해 민간에서는 반일감정이 강하게 남아있던 시기였다.]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북한은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였고([[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]]), 민간 항공기를 폭파하였으며([[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]]), 공산주의의 수괴인 소련도 대한민국 민항기를 격추하였기 때문에([[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]]) [[반공]] 정서가 매우 강했던 시기였다. 이 시기에 [[전두환]] - [[나카소네 야스히로]], 그리고 당시 [[미국]] 대통령이었던 [[로널드 레이건]]의 한미일 삼각보수동맹은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며 각별한 관계를 가졌다. * 하지만 1982년과 1986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나 돈독했던 한일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다. 그리고 1982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에 열받은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[[충청남도]] [[천안시]]에 한 박물관을 지었으니, 그것이 바로 [[독립기념관]]이다. 그리고 1980년대 말 탈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과 밀접한 관계였던 동유럽 공산권 국가랑 수교하면서 양국은 다시 데면데면해졌다. * [[1990년대]]에는 중국이 [[덩샤오핑]]의 흑묘백묘론에 따라 [[자본주의]]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하였고, 대한민국도 1992년에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.(일본이 중국과 수교한 것은 1972년이다.) 그리고 [[김대중]] 대통령 취임 후 1998년에는 [[일본 대중문화 개방]]이 이루어짐으로써 약 50년간 닫혀 있었던 일본 문화 유입 금지의 빗장이 풀렸다. * 2000년대 초는 일본 [[고이즈미 준이치로]] 총리가 취임하여 우익 노선을 걸은 데다가, [[새역모]]에서 발간한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불편했던 시기였다.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[[일본 대중문화 개방]]으로 인해 한국에 [[일본 애니메이션]] 및 [[오타쿠]] 문화가, 반대로 일본에는 [[일본의 한류]] 문화가 정착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. * 2010년대 초반에는 한일 간의 갈등이 두드러졌으나 중반에 [[북한의 4차 핵실험]]과 중국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실망한 한국이 [[THAAD]]를 도입하고 이로 인해 안보위협을 느낀 중국이 한국에 여러 경제 보복 조치를 감행함으로써 점점 '''한국 vs 중국 vs 일본'''의 삼파전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기조는 2010년대 내내 이어졌다. * 2020년대에 들어서는 [[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-19|중국발 전염병]]이 창궐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크게 불거졌고, 특히 한국은 반중 감정이 반일 감정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심해졌다. 또한 [[신냉전]] 시대가 도래하며 중국의 [[패권주의]]적 행보가 심화되고 북중러 3국이 점점 밀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한동안 과거사 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었던 한국과 일본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